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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의 천사

w. 알

  당신은 나리타 공항에서 추위에 떨고 있다.

 

  하네다와 나리타 모두 도쿄 방문자들이 이용하는 공항이지만, 나리타 공항에서 이착륙하는 비행기의 요금은 하네다를 이용할 때보다 저렴하다. 하네다 공항은 도쿄 오오타구에 위치해 있으며 나리타 공항은 치바현 나리타시에 있다. 나리타 공항에 내린 후 도쿄 도내로 진입하려면 철도 혹은 버스로 한 시간 남짓을 이동해야 한다. 하네다 공항을 이용한다면 겪지 않아도 될 불편이다.

 

  시각은 교통이 끊긴 한밤중이다. 당신은 나리타 공항 여객 터미널의 어느 벤치에 옹송그리고 앉아 있다. 당신은 혼자다. 옷을 두텁게 입었고 몸도 한껏 움츠리고 있지만 온기는 쉽사리 피어오르지 않는다.

  공기가 건조하다. 뺨의 살갗이 거슬거슬하게 일어난 것이 느껴진다. 안구의 움직임이 다소 뻑뻑하다. 눈을 깜박일 때마다 미약하게 따끔거리기도 한다. 당신은 손등에 여러 차례 핸드 크림을 덧발랐는데, 그로 인해 살갗이 번들거리고 미끌해지기는 했지만 어쩐지 수분은 채워지지 않은 것 같다.

 

  당신은 여행자다. 혹은 당신은 여행자보다 더 힘든 누군가다.

  당신은 나리타 공항에 막 도착한 참이다. 혹은 당신은 나리타 공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의 이륙 시간을 기다리는 중이다. 표값을 아끼기 위해 당신은 한밤중에 공항에 도착하는 항공편을 예매할 수밖에 없었고 이제 이곳에서 밤을 지새워야 한다. 혹은, 표값을 아끼기 위해 당신은 이른 새벽에 떠나는 항공편을 예매할 수밖에 없었고 비행기가 이륙하기까지 기다리며 이곳에서 밤을 지새워야 한다.

 

  당신은 자신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여객 터미널 내의 어딘가라는 것만 안다. 당신의 시야에는 저 멀리 불 꺼진 편의점이 보인다. 에스컬레이터도 보인다. 현위치를 파악하려 들면 파악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행위가 어쩐지 의미 없게 느껴진다. 당신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내일 - 이미 자정이 지났으니 엄밀히 말하자면 오늘 - 날이 밝아 오면 자신이 어디로 이동해 무슨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는 알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듯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것만으로도 버겁다.

 

  당신의 옆의 옆 벤치에는 어느 가족이 있다. 큰 아이 하나와 작은 아이 하나 그리고 삼십대 여성으로 이루어진 가족이다.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이 작은 아이를 안아 달래고 있다. 그러는 동안 큰 아이는 자그만 벤치에 몸을 끼워맞추듯이 한껏 웅크린 채 모로 누워 곤히 잠들어 있다. 자장가를 부르는 듯 동화를 들려주는 듯, 히잡을 쓴 어머니는 눈을 감고 무언가를 속삭인다. 작은 아이가 무어라 웅얼거리자 어머니는 작은 과자를 꺼내어 건넨다. 이곳의 공기는 그들에게도 차갑고 건조할 것이다.

 

  당신은 목이 마르다.

  조금 전 자판기에서 샀던 모구모구 음료수 한 병을 당신은 한 모금 마신다. 음료수는 복숭아 맛인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도 같다. 달다. 갈증은 가시지 않는다. 진하고 향이 강한 음료수가 훑고 지나간 혀와 목구멍에, 어찌할 도리 없는 메마른 감각만 남았다.

  당신은 남은 음료수를 전부 들이켠다. 여전히 갈증은 가시지 않는다.

 

  빈 병을 품은 채 당신은 웅크린다. 페트병을 버리러 쓰레기통으로 향하려면 몸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그러면 아주 많은 온기를 잃게 될 것이다. 다시 벤치에 앉았을 때 몸을 감싼 온도는 지금보다 차가울 테고, 지금만큼이라도 견딜 만하게 몸이 다시 데워지기를 기다리려면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오늘은 성탄절이다.

  당신은 느릿하게 눈을 깜박인다.

  받고 싶은 선물…. 소원…. 희망…. 둔한 말들이 부조리하고 무감각하게 뇌리를 맴돈다. 그것들은 별다른 감흥을 일깨우지 않는다. 당신은 옷을 겹겹이 껴입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춥다. 간신히 혼자서 품에 가두어놓은 이 미약한 온기가 냉혹한 겨울 한기 속으로 흩어지지 않기만을 당신은 바랄 뿐이다.

 

  시간이 좀처럼 흐르지 않는다. 당신은 잠을 청해 보기로 한다. 편히 누워서 잘 수는 없다. 지켜야 할 짐이 있기 때문이다. 엉거주춤하게 캐리어를 다리 사이에 끼우고 백팩과 스트링백의 손잡이를 팔에 주렁주렁 꿴 채 당신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여 본다. 몇 번씩 거듭 확인하며 알람을 단단히 맞추어둔 후다. 어차피 푹 자서는 안 되니, 몸을 눕히고 편히 잠들 장소가 없는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당연히도 잠은 쉬이 오지 않는다. 아니, 금세 의식이 희미해진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는다, 선득선득 신경이 날카롭다…. 그러는 와중에 정신이 몽롱해진다,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다…. 뒤섞이는 혼돈 속에서 당신은 잠이 든다.

  그리고 당신은 어떤 꿈을 꾸었을까? 행복하던 시절에 대한 꿈이었을까? 당신에게 행복하던 시절이 있었을까? 아니면 앞으로 찾아올 행복에 대한 꿈이었을까? 당신은 언젠가 행복해질까? 행복은 허상이 아닌 실질이었던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으면 행복해질까?

 

  눈이 떠진 것은 한참 시간이 흐른 후다.

  다행이다, 이제 조금만 버티면 해가 뜬다, 생각하며 당신은 핸드폰을 켜 시각을 확인한다. 그러고는 금세 낙담한다. 시간의 흐름은 기분 탓이었을 뿐 실제로는 시간이 아주 조금밖에는, 낙타가 순록의 죽음을 슬퍼하는 데에 들이는 시간만큼밖에는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나 견뎌야 할까, 무엇으로 견뎌야 할까, 당신은 막막해진다.

 

  공항 여객 터미널 어딘가에 가챠퐁 센터가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다. 그곳에서 100엔 동전을 몇 개 넣고 기념품을 뽑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자판기에서 목을 제대로 축일 만한 음료수를 살 수도 있을 것이다. 마음에 드는 음료수를 갖춘 자판기가 눈에 띌 때까지 이곳저곳 돌아다녀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아, 하지만….

 

  당신은 움직이지 않는다. 빈 페트병 하나를 품은 채.

  페트병은 미약한 온기를 띠고 있다. 당신 자신의 체온을 나누어 덥힌 온기다. 그것은 따뜻하고, 당신이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물체이고… …그리고 텅 비었고, 당신이 몸에서 떼는 순간 금세 식을 것이다.

 

  어찌해야 할까.

  생각하는 순간.

 

  당신은 한 청년을 발견한다. 청년의 모습을 한 천사를.

  그가 어디로 향하는 여행자인지 당신은 알지 못한다. 이 공항에 막 도착한 것인지 이 공항에서 출발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어딘가로부터 와서 여기서 갈아타 다시 어딘가로 가려는 것인지.

 

  그는 옷을 겹겹이 갖추어 입고 있다. 가장 밑의 얇은 티셔츠에서 시작해 웃옷 여러 겹에다 두툼한 겉옷까지. 일교차가 큰 지역에서 와서인지, 아니면 이곳과 기후가 반대인 어딘가로 가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밖의 다른 사정이 있는지 당신은 전혀 알지 못한다.

 

  그의 산더미만한 백팩에는 카라비나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그것이 실제로 사용하는 물건인지 아니면 산행 분위기를 내기 위한 장식품인지도 당신은 알지 못한다. 그의 뺨과 광대에는 긁힌 듯한 상처가 나 있다. 그 상처가 오래되었는지 갓 생겼는지, 기꺼이 감수한 상처인지 피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당신은 전혀 알지 못한다.

 

  당신에게 분명한 것은 오직 하나다.

  행복으로 가득한 그의 미소.

 

  그는 금세 사라진다. 당신은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시선으로 좇는다. 그가 당신의 눈앞에 나타났던 것은 한순간이었다. ‘당신의 눈앞을 달려서 지나간 어느 공항 이용객’. 그를 객관적으로 서술하자면 그뿐이었다. 고작 그만큼의 일이 당신의 눈앞에서 일어났을 뿐이다. 그렇지만. 왜인지.

 

  문득 당신은 창밖을 본다.

  그리고 깨닫는다. 눈이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와 동시에 기억해낸다. 당신이 눈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눈이 내리는 밤이면 찾아오는 고요한 정적과 모든 것을 끌어안는 부드러운 흰빛을 당신이 아직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직도, 그 모든 일이 있은 후에도….

 

  당신의 옆의 옆 벤치에서는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자장가를 불러 주고 있다.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MERRY CHRISTMAS WITH NISHINOYA 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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