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생일축하해

w. 월하연

  "오늘 일이 끝나면 나랑 고향으로 가자."

 

 

  남자 둘이 식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앉아있었다. 휑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넓은 방을 채우고 있는 것은 책상 위의 촛불과 아사히의 목소리였다.

 

 

  "이게 내 생일 선물이야, 노야."

 

 

  아사히의 말의 놀란 것도 잠시, 니시노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보이는 모습에 비해 소심하고 솔직하지 못하기에 동기들이 은퇴하거나 승진할 때도 최전방에서 전투를 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방금의 저 말은 당당하게 자신의 은퇴를 얘기할 거라는 예고였다. 아사히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솔직하길 바랐던 니시노야로서는 그 말이 최고의 생일선물이었다. 니시노야가 책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진 총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기대하고 있을게, 내 생일 선물."

 

 

  아사히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그의 손에 들린 긴 총이 책상을 건들면서 난 묵직한 소리가 방에 울렸다. 이제 이 소리도 마지막이다. 니시노야와 아사히가 그 생각에 미소 지었다. 다시는 총을 만지지 않는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럼 가자."

 

 

  말을 마친 니시노야가 식탁 위에서 붉게 타고 있는 양초에 바람을 불었다. 방 안을 비추던 유일한 빛이 없어지자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온기가 사라져갔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음에도 상대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다. 쓸데없이 넓기만 한 이 방도 이제 마지막이네. 금방 떠날 거라 생각해 최소한의 가구들로 채운 방이었다. 자신의 생각보다는 오래 머물렀지만, 그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니시노야가 문을 열자 어두운 방에 밝은 햇살이 들어왔다. 그 햇살에 니시노야가 눈을 찡그리듯 웃었다. 방 안에 다시 온기가 돌았다. 우리의 미래는 밝고 따뜻해야 한다, 마치 이 햇살처럼.

 

  _

 

  "열한 시 방향에 세 명."

 

 

  총소리와 사람의 비명, 명령을 내리는 아군과 적군의 섞인 고함이 주위에 가득했지만, 니시노야의 목소리는 이런 것들이 익숙하다는 듯 침착했다. 그 목소리는 '침착하다'라는 표현도 아쉬울 정도의 목소리는 무감정하다고 말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듯했다. 니시노야의 말이 끝나자 무전 너머로 총소리가 세 번 울렸다. 조용해진 무전을 익숙하단 듯이 바라본 니시노야는 다시 모니터를 보며 적군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처리 완료."

 

 

  니시노야가 새로운 적군의 위치를 파악했을 때가 되어서야 무전 너머로 아사히의 대답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이 때늦은 대답을 기다리는 것에 꽤 애를 먹었었다. 뭐든지 신속하게 처리하던 니시노야와 달리 아사히는 느리더라도 신중하게 처리했다. 그렇기에 자신이 제대로 처리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고, 둘이 파트너가 된 지 얼마 안 됐을 적에는 니시노야가 그 시간을 견디기 어려워했다. 함께한 지 5년이 넘은 지금은 그것에 제일 익숙한 사람이 된 것은 물론 가끔 다른 팀과 일할 때면 그 늦은 대답이 그립기까지 했다.

 

 

  "전보다 더 치열해진 거 같아."

 

 

  사방에서 들리던 총소리도 끊기고 적막만이 주위를 맴돌았다. 어떤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는 상황에서 니시노야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무전 너머의 아사히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부군으로 일하면서 많은 전쟁에 참여했다. 전쟁이라는 단어가 아까울 정도의 상황도 있었지만, 역사책에 남을만한 것도 많았다. 그리고 지금은 그 어떤 것보다 치열했다. 반정부군과의 협상이 불발되면서 시작된 전쟁은 무려 한 달이나 지속되었다. 이 질긴 전쟁을 끝낼 때가 되었다. 먼저 말하지는 않아도 이 전쟁에 뛰어든 모두가 그리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니시노야는 이 전쟁에서 질 마음이 없었다. 누가 전쟁에서 질 생각을 하겠냐마는, 니시노야와 아사히에게 이 전쟁은 인생의 마지막 전쟁이 되어야만 했다. 여기서 승리해서 붙잡을 명분을 더 만들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패배하면 패배를 이유로, 승리하면 승리를 이유로 둘을 구워 먹고 삶아 먹을 계획을 짜고 있겠지만 눈에 뻔히 보이는 그 놀음에 더 놀아나고 싶지 않았다. 정부는 이미 둘이 그만둘 생각이라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러나 니시노야가 얘기를 꺼내면 전혀 몰랐다는 듯 자신들의 입장을 생각해달라고 아사히에게 부탁할 것이다. 단호한 니시노야와 물러터진 아사히. 그게 정부가 생각하는 둘의 모습이었으니까. 아사히의 웃는 얼굴을 봐서 계약을 이어갔지만, 그 자비도 더는 없다. 이 전쟁과 함께 정부와의 계약이 끝나면 아사히의 말대로 고향에 내려가리. 니시노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유는 조금 다르더라도 아사히 역시 니시노야와 같은 생각이었다. 아사히에게 정부는 갈 곳 없는 자신을 받아준 유일한 곳이었다. 그래서 그것이 순수한 도움이 아닌 것을 알고 있음에도 계속 남아있었다. 어찌 되었든 자신을 받아준 곳이었기 때문에, 이곳을 떠나도 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큰일이 없다면 자신은 평생 정부 소속으로 남아 일했을 거라 생각했다. 5년 전까지만 해도. 니시노야를 처음 만났을 때는 참 맑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관심이 갔고, 튀는 머리라 금새 얼굴을 익힐 수 있었다. 말을 먼저 걸 용기가 쉽게 생기지 않아 지켜만 보던 차에 파트너가 되었고 살가운 성격에 지금의 관계까지 올 수 있었다. 니시노야와 더 가까워질수록 정부와는 더 멀어졌다. 애초가 갈 곳이 없어 있었던 곳이었으니 갈 곳이 생기자 소속된 시간이 우습게도 하루빨리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말을 하자니 미안하기도 하여 말 못 한지 벌써 2년, 오늘은 꼭 말할 것이다. 이 전쟁에서 승리해 당당히 돌아가 모든 것을 그만두겠노라 꼭 말할 것이다. 오늘은 니시노야의 생일이니까.

 

  _

 

  이번 전투로 얼마나 많은 총알을 썼는지는 걸을 때마다 밟히는 총알들이 알려주고 있었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총알을 보자, 그제야 전쟁이었다는 게 실감 났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죽이는 피 튀기는 전쟁. 직접 총을 드는 아사히와 달리 니시노야는 전체를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니시노야의 역할은 적군의 위치를 알려주고 아군을 이끄는 중요한 것이었지만, 전쟁 상황을 느끼긴 어려웠다. 그래서 니시노야는 전쟁이 끝난 뒤의 상황을 보고서야 자신이 전쟁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전쟁이 남긴 생명 없는 곳을 보면 일과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 들곤 했다. 그럴 때면 없는 줄만 알았던 아사히의 눈치가 생겨나 아무 말 없이 니시노야의 손을 잡았다. 아사히의 큰 손이 니시노야의 손을 감싸면, 그에 대답하듯 니시노야의 손가락이 아사히의 손가락 사이에 단단하게 자리를 잡았다. 전쟁 후, 오랜만에 마음 편하게 느끼는 서로의 온기가 니시노야의 기분을 부드럽게 만들었다. 거리에 흘러넘치다 시피 있는 총알들과 총기들을 옆으로 밀어 길을 만들었다. 총알이 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이 전투가 끝나서 그런지 평소에는 무거웠던 총이 너무 가볍게 느껴졌다.

 

  전쟁이 끝난 뒤 센터로 가는 길은 험했다. 어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길이 험했다. 전쟁으로 인해 사람의 발길이 끊긴 길은 관리하는 이가 없으니 투박해졌다. 빠르게 달리는 차는 계속 덜컹거렸고 방석하나 없이 차에 앉아있는 이들은 딱딱한 나무 의자가 주는 아픔을 받아야 했다. 평소라면 아프다며 투덜거렸겠지만,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전쟁이 끝났다는 해방감과 가족을 볼 수 있다는 기쁨만이 그들을 감쌌을 뿐이다. 니시노야와 아사히 역시 당장이라도 군복을 벗어 던지고 고향으로 떠나고 싶을 정도였다.

 

  센터에는 이미 도착한 다른 팀들과 센터장이 있었다. 직접 전쟁에는 참여하지 않은 센터장. 그래서인지 그는 팀원들을 바로 집으로 보내기보다는 형식적인 것에 집착했다. 그러나 멍하니 서 있는 팀원들에게 센터장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트럭에서 내리는 니시노야와 아사히를 본 센터장이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두 팔을 벌리고 둘에게 다가갔다. 포옹은 거절한다는 뜻으로 니시노야가 아사히를 잡고 한 발 뒤로 물러서자, 센터장은 무안한지 쩝, 소리를 내며 팔을 내렸다. 니시노야와 아사히가 질리도록 본, 더는 보고 싶지 않은 미소를 지으며 그가 박수쳤다. 그에 멍하니 있던 팀원들이 하나둘 박수 쳤다. 이런 사소한 것에 센터장의 성격을 알기에, 없는 힘을 끌어내어 치는 박수였다.

 

 

 

  "이번에도 정말 수고했네. 자네들이 있기에 이 나라가 건재할 수 있는 것이겠지. 사실 이번에는 반정부군이 너무 발악해 걱정을 많이 했네만, 역시 우리의 영웅들이 존재하기에..."

 

 

  길어질 뻔한 센터장의 말은 아사히에 의해 금방 끊겼다. 귓속말했기에 무슨 대화인지 들은 사람은 없지만, 다들 그의 길지만 쓸데없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에 미소를 지었다. 아사히의 말을 듣고 표정이 어두워진 센터장은 전쟁이 끝났으니 당분간은 쉬라며 모두를 보냈다. 의아한 마음은 들었겠지만, 집에 보내준다는 데 머뭇거릴 이유는 없었다. 순식간에 많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그 장소에는 니시노야와 아사히, 센터장 단 세 명만 남았다. 어두운 얼굴로 한숨을 쉰 센터장이 니시노야와 아사히를 번갈아 쳐다봤다.

 

 

  "정말 은퇴할 거야? 아직 은퇴하긴 이른 나이라 생각들지 않나? 둘 다 아직 건강하고 전쟁터에서도 잘 싸우는데 왜 은퇴하려 하나. 혹시 우리가 주는 게 부족하다면 얘기하게 내가 최대한..."

 

 

  센터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니시노야가 고개를 저었다. 이미 결정한 것, 저 얘기를 듣는 것은 시간 낭비에 불과했다. 그걸 들을 시간이면 함께 손을 잡고 고향으로 내려갈 준비를 하는 게 더 유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호한 니시노야의 모습에 센터장이 고개를 떨궜다. 포기하려나, 싶을 즘에 고개를 들고 몸을 아사히 방향으로 틀었다. 사람 참 안 변해. 니시노야가 속으로 생각했다. 전과 달리 이번에는 본인이 먼저 얘기했고 자신의 생일선물이라는 점에서 니시노야는 아사히가 잘 대처를 할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또 휘말리진 않을까 걱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국민에게 전쟁영웅인 아사히지만, 니시노야의 눈에 그저 소심해서 챙겨줘야 하는 애인일 뿐이었다. 센터장의 말을 듣고만 있는 아사히에 니시노야가 의견을 대변하려는 순간, 아사히가 니시노야의 손을 잡았다.

 

 

  "제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애인인 저에게 하는 말인지, 은퇴를 다시 생각해보라는 센터장에게 하는 말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어느 쪽이든 기분이 좋았다. 자신 외의 다른 사람에게 아사히가 솔직하게 구는 것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멋지다, 내 남자. 니시노야의 입꼬리가 흐뭇함을 참지 못하고 올라갔다. 아사히의 단호함이 가득한 그 말에 센터장은 결국 항복했다. 조금의 기대로 들렸던 고개는 땅에 박을 듯이 내려갔고 그의 손은 힘없이 니시노야와 아사히를 향해 흔들었다. 말리지 않을 테니 빨리 떠나란 뜻이었다. 그리고 센터장은 여전히 힘없는 모습으로 센터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다. 어차피 짐을 챙기러 센터로 들어가야 하는데, 뭘 빨리 떠나라 그런담? 니시노야가 작은 목소리로 삐죽거리자, 아사히가 가볍게 웃었다. 전쟁 전에 마지막으로 듣고 지금에서야 듣게 된 웃음소리였다. 그 웃음을 들으니 모든 것이 실감 났다. 전쟁이 끝난 것도, 아사히와 함께 자유로워진 것도. 니시노야가 센터를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있을 때, 아사히가 그의 이마를 쓸었다. 그리고 니시노야가 뭔지 생각을 하기도 전에 아사히의 입술이 이마에 가볍게 닿았다 떨어졌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사람처럼, 아사히가 미소 지었다.

 

 

  "생일 축하해, 노야."

HAPPY BIRTHDAY TO NISHINOYA YU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