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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과의 만남

w. 익명

  아이는 무척이나 작았다. 태어났을 때도 어찌나 작은지 산파가 아기를 두 손으로 감싸면 아이의 몸통 절반 이상이 가려질 정도로 아이는 너무도 작았다. 산파를 혀를 차며 아이의 어미에게 말했다.

 

 

  채 하루를 넘기지 못할 것이네.

 

  아닙니다. 이 아이는 아주 건강하게 자랄 것입니다.

 

 

  산파는 어미가 출산의 고통 때문에 잠시 정신이 나간 그것으로 생각했다. 아이를 어미에게 안겨준 뒤 고개를 저으며 밖으로 나가 어미의 부모에게 아이의 출산 소식을 전했다. 산파의 말에 늙은 노부부가 허겁지겁 집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고생했다 얘야! 그래 아기는 어떠냐? 아기가 정말 작고 곱습니다. 어디 보자 아이고 우리 손자 잘생겼구나. 이봐요. 영감 우리 손자 정말 잘생겼지 않습니까? 그럼, 누구 손자인데! 하지만 아이가 너무 작아서 불안합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 건강하게만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아기의 어미는 산파가 했던 말이 내심 불안했던 듯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품 안의 아기를 끌어당겨 안았다. 걱정하지 말아라. 우리 니시노야 집안사람인데 건강하나는 타고났을 것이다! 나를 봐라 이 아비도 어렸을 땐 방아깨비처럼 삐쩍 말랐단다. 근데 지금은 보거라 내 멧돼지도 때려잡는 강인한 체력을 가졌지 않느냐! 아이고, 이 영감 또 헛소리를 하시는구려. 그래, 얘야. 이 영감 말대로 우리 집안 사람들 체력 하나는 타고났으니 말이다. 분명히 이 아이도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랄 것이다. 너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몸조리나 잘하려무나. 그건 그렇고 아이의 이름은 정하였느냐? 네, 생각해둔 이름이 있습니다. 어미는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춘 후 말했다.

 

 

  "유우, 니시노야 유우(西谷 夕)입니다."

 

 

 

 

  그것과의 만남

 

 

 

 

 

  아이의 어미는 아이가 채 말을 때기도 전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늙은 노부부는 온갖 곳을 수소문해 지병에 좋은 약을 찾아왔지만, 딸의 병은 고쳐주지 못하였다. 차갑게 식은 딸아이의 시신 앞에서 노부부는 손자를 안아 들고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자신의 손자에게는 제발 지병만은 없기를 신께 빌고 또 빌었다. 아이는 아직 제 어미의 죽음을 알기엔 너무 어렸다. 제 할아버지 할머니가 왜 눈물을 흘리는지 이해하지 못했기에 아이도 그저 같이 울어 재낄 뿐이었다.

 

 

  산파의 말이 거짓이라는 걸 증명하듯 아이는 매우 건강하게 성장했다. 하지만 성장은 열두 살 이후 매우 더디게 자라 또래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확연히 차이가 났다. 아이는 이것이 매우 속상했다. 대신 집안 내력인지 체력은 보통 아이들보다 몇 배는 좋아 힘든 일도 곧잘 해내곤 하였다. 속이 깊은 아이는 어서 빨리 자라 제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타고난 밝은 성격과 씩씩한 모습에 마을 안에서 아이는 어딜 가나 눈에 띄고 사랑받는 아이였다.

  

 

  그것이 아이와 만난 건 아이의 나이 열일곱에 일이었다. 아이는 여느 때와 같이 먹을 것을 찾기 위해 똑같이 산을 올랐으며 작은 나무 열매 한 줌과 산나물 몇 가지 운이 좋게 그 전날에 개울가에 놔뒀던 통발에 물고기 두어 마리가 걸려 평소보다 들뜬 마음으로 마을로 돌아오던 길에 일어난 일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마을까진 고작 5리가 남은 상황 저 멀리 아이가 서 있는 길 앞에 새빨간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순간 걸음을 망설였지만 아이는 워낙 호기심이 많은 성격인지라 천천히 걸음을 옮겨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빨간 것과의 거리가 고작 몇 걸음 남은 상황. 자세히 보니 빨간 것은 전부 피였다. 놀라 한걸음에 그것에게 다가가 아이는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직 숨이 붙어있는지 몸이 느리게 오르락 내리고 있었다. 아이의 기척을 느꼈는지 피를 흘리고 있던 그것은 천천히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려 아이에게 시선을 맞췄다. 눈에선 살기가 가득했다.

 

 

  "너 다쳤어?“

 

  "...............“

 

  "많이 아프겠다. 피 좀 봐! 잠깐만 기다려."

 

 

  아이는 그것을 지나쳐 빠른 속도로 앞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아이가 사라지자 그것은 다시 눈을 감고 호흡을 고르기 시작했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피 냄새를 맡고 산짐승들이 몰려들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몸은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이대로 죽는 건가 싶은 그때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었고 그것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

 

 

  "정신이 들어? 다행이다. 하도 깨어나질 않아서 죽는 건가 싶었어.“

 

  "...............“

 

  "일단 피가 나는 곳은 치료했는데 내가 좀 서툴러서 잘했는지 모르겠다.“

 

  "...............“

 

  "오늘은 이만 가볼게. 여긴 내 비밀 장소라서 아무도 오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푹 쉬어! 내일 또 올게.“

 

  "..............."

 

 

  주위를 둘러보니 작은 동굴엔 굴러다니는 잡동사니 몇 개와 천 조각 몇 가지로 어설프게 꾸며 보기라로 했다는 듯이 어설프게 매달려있는 모습을 보니 아이 혼자만 이용하는 장소가 맞는 거 같았다. 어찌 되든 상관이 없었다. 그저 그것은 아이가 빨리 사라져주길 바랄 뿐이었다.

 

 

  "오늘은 육포야! 이거 진짜 진짜 진짜로 엄청 귀한 거야!”

 

  "...............“

 

  "할머니가 할아버지한테는 비밀이라 하시고 조금 주신 거야. 너한테도 나눠주려고 가져왔어.“

 

  "...............“

 

  "잠깐만, 아직은 씹기 힘들지? 물에 조금 불려줄게."

 

 

  아이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매일 그것이 있는 곳에 찾아왔다. 어느 날엔 과일을 어느 날엔 자신의 점심을 나눠주었고 또 어느 날은 주위에서 받아온 주전부리는 들고 왔다. 제 혼자 먹기도 부족할 양일 텐데 아이는 콩 한 쪽이라도 그것과 나눠 먹으려 하였다. 맘씨가 착으로 곱다고 생각하면서 너무 착해 행여 나쁜 맘을 먹은 사람한테 이용당할까 약간 걱정도 되었다. 미안 나도 집에 데려가고 싶은데 할아버지가 산에서 데려온 거는 별로 좋아하지실 않아서. 그렇게 변명하며 제가 미안한 표정을 짓는 아이를 보며 그것은 의아해했다. 왜 자기가 미안해하지? 역시 이상했다.

 

  아이와 만난 지 어느덧 다섯 달이 흘렀다. 아이의 자신을 니시노야 유우라고 하였다.

 

  이제는 아이가 나타날 시간이 되면 고개를 들어 아이가 들어올 곳을 쳐다보는 게 하나의 즐거움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굴 입구에서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그것을 반겨주었다.

 

 

  "상처가 많이 나았네. 이제 붕대는 안 감아도 되겠다. 그나저나 엄청 큰 상처였는데 너 회복력이 엄청 빠르구나. 나도 그래! 체력 하나는 자신 있어.”

 

  "................“

 

  "근데 몸은 하나도 안 자라는 게 걱정이야. 다들 내가 아직도 어린애인 줄 안다니까 나도 벌써 열일곱 살인데!“

 

  "................“

 

  "뭐야, 너 안 믿는 눈치다? 정말이야 내가 이렇게 보여도 마을 아이 중에선 나이가 두 번째로 많다고!"

 

 

 

  ***

 

 

 

  요 며칠 아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행여 오는 길에 해코지라도 당한 게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아무 일 없다면 다행이지만 몸속에서 계속해서 생겨나는 불안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 차라리 바빠서 저를 깜빡하고 잊어서 그래서 못 온 거면 좋으련만.

 

 

 

  ***

 

 

 

  "미안, 요즘 마을 상황이 안 좋아서 오질 못했어."

 

  "................"

 

 

  아이의 말에 고개를 들어 상태를 살펴봤다. 자세히 보니 아이는 조금 야위어 보였다. 영양을 잘 섭취하지 못한 것인지 손끝도 약간 거칠어져 있었다. 가뜩이나 작은 체구가 유독 더 작아 보였다. 그것은 괜히 기분이 나쁘고 불쾌했다. 요즘 비가 내리지 않아서 곡식이 잘 자라지 않아. 그래서 먹을 것도 부족하고 이상하게 과일들도 잘 자라지 않아. 항상 이 시기에는 나무에 열매가 풍성했는데. 이대로 가면 식량을 저장하지 못해 올겨울에 버티기 힘들 거야.

 

 

 

  ***

 

 

 

  신께서 토지를 돌봐주시지 않고 계십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신께서 우릴 버리시기라도 하셨단 말인가?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신께서 계속 자리를 비우고 계십니다.

 

  신께서 자리를 비우시다니?

 

  아마 여러분의 정성이 부족해 신께서 기분이 상하신 게 아닐는지.

 

  무슨 소린가! 우린 항상 그해에 가장 좋은 품질의 곡식과 예물을 신께 바치는데 정성이 부족하다니.

 

  신이 다시 이곳에 관심을 보이게 하시려면 더 귀한 걸 바쳐야지요.

 

  귀한 걸 바치라니……. 지금 우리 사정을 보게. 곡식이 자라지 않아 마을 창고를 개방해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는데 여기서 귀한걸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예로부터 목숨보다 귀한 건 없다고 했습니다.

 

  자네 지금, 사람을 바치란 말인가?

 

  아이를 신의 신부로 바치십시오.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와 인연을 맺고 토지신을 이곳에 완전히 뿌리내리게 만들어야 신께서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

 

 

  마을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아이를 바치십시오. 그럼 마을엔 더는 그 어떠한 역병도 가뭄이 들지 않을 것이며 땅은 항상 기름지고 사계절 내내 풍족한 곡식과 신의 은혜를 입을 것입니다.

 

 

 

  ***

 

 

 

  "있잖아 나 이제 더이상 여기 못 올 거 같아. 어디 멀리 가게 됐거든.“

 

  "...............“

 

  "그래서 오늘 작별 인사하러 온 거야.“

 

  "...............“

 

  "내가 없어도 밥 잘 먹고 건강해야 해. 알았지?“

 

  "..............."

 

 

  그리 말한 아이는 평소보다 배는 돼 보이는 음식과 주전부리를 들고 제 앞에 나타났다. 딱 봐도 아이의 수준으론 구할 수 없는 귀한 음식들이 눈에 띄었다. 필히 타인에게 얻었던가 혹은 나쁜 손장난을 쳤던가 둘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아이의 성격상 절대 타인의 물건에 손을 대지 못할 것을 알기에 누군가에게 받은 것이 분명했다.

 

 

  "이 정도면 당분간은 혼자서 지내는데 문제없을 거야."

 

 

  그리 말하는 아이는 우는 것인지 웃는 것인지 미묘한 표정을 지어보았다. 하지만 두 눈엔 눈물이 가득 들어차 툭 치면 금방이라도 넘쳐흐를 것 같이 보였다. 한눈에 봐도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하지만 아이는 그 사실을 자신의 입으로 말했다간 애써 다잡은 마음이 무너질까 봐 입술을 꾹 깨무는 것으로 행동을 대신했다. 그것은 살며시 아이의 몸에 자신의 몸을 기대었다. 처음 하는 그것의 행동에 아이는 놀라 몸을 살짝 떨었지만 이내 평소에 보여주던 햇볕같이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 그것을 마주 안아주었다.

 

 

  "고마워, 지금 나 위로해 주는 거야?"

 

  "..............."

 

  "역시 넌 착해. 떠나기 전에 보러 오길 정말 잘한 거 같아."

 

  "..............."

 

  "인제 그만 가봐야겠다. 잘 있어."

 

 

  아이는 감쌌던 팔을 풀어 그것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자리에서 일어나 동굴 밖으로 사라졌다. 혼자 남은 그것은 아이가 사라진 곳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

 

 

 

  "아이고 신관님 안됩니다! 우리 아이는 안됩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살려주십시오!"

 

  "어찌 이러는 것이냐. 이게 다 마을과 자네들을 위함이네."

 

  "이게 어떻게 저희와 마을을 위해서란 말입니까. 개죽음도 이런 개죽음이 없습니다! 세상에 신께서도 너무하십니다. 아직 열일곱입니다. 이제 어린 티를 간신이 벗었습니다. 차라리 이 늙은이를 데려가십시오. 이 늙은이는 언제 죽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니 제발 우리 손자만은 살려주십시오. 어르신."

 

  "말귀를 못 알아먹는구나. 제물이 아니라 신부로 가는 거라 하였거늘. 이건 대대로 자네 가문에도 영광일 것이네."

 

  "신부일지 저희를 속여넘기려는 사탕발림인지 어찌 압니까. 제물도 영광도 필요 없습니다. 제 자식을 잃었습니다. 저희에게 남은 건 이제 이 아이뿐이란 말입니다!"

 

  "다수를 위해선 소수가 희생할 줄 알아야 하네. 이제 시간이 되었다."

 

  "차라리 저희도 데려가십시오. 종으로 부리든 잡아먹든 상관없으니 우리 유우와 함께 만 있게 해주십시오."

 

  "뭣들 하느냐 어서 떠날 채비를 해라."

 

 

  아이고 유우야 안된다! 유우야! 신관의 말에 아이를 태운 화려한 가마는 천천히 그러나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산속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뒤에선 늙은 노부부의 찢어지는 비명이 들려왔고 아이는 애써 뒤를 돌아보지 않기 위해 주먹만 꾹 움켜쥘 뿐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덜컹거리는 약간의 움직임과 함께 이내 가마가 멈췄다. 가마에 딸린 작은 창으로 밖을 내다보자 저를 싣고 온 남자들이 허겁지겁 자리를 뜨는 보습을 지켜봤다. 도착한 거구나. 아이는 천천히 가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제단 앞으로가 자리를 잡았다. 여기서 가만히 기다리면 되는 건가? 할머니 할아버지 아까 엄청나게 우시던데……. 효도는 하고 죽고 싶었는데 불효만 하고 가네…….

 

 

  아이가 생각에 잠겨있는 그때

 

 

  -바스락

 

 

  뭐지? 산짐승? 아니면 진짜 신? 아이가 두려움에 덜덜 떨고 있을 때 뒤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가 긴장으로 침을 한번 꿀꺽 삼키며 소리가 나는 곳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쳐다봤다. 이내 새까만 작은 물체가 튀어나왔고 그것을 본 아이의 표정은 한없이 밝아졌다.

 

 

  "여우야!"

 

 

  아이가 그것을 여우라 부르며 소리쳤다. 그곳엔 작은 여우 한 마리가 서 있었고 이내 여우는 천천히 다가와 아이의 품에 폭 안겨 고개를 비볐다. 낯선 곳에서 반가운 존재를 만난 것에 긴장이 풀린 건지 아이는 이내 두 눈에서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행여 소리라도 새어 나갈까 숨죽여 우는 모습이 여간 가여운 게 아니었다. 그런 아이를 안심 시키려는 듯 작은 여우는 혀를 살짝 내밀어 아이의 얼굴을 핥아 주었다.

 

 

  "여우야…. 여긴 왜 왔어…. 흑...내가 작별 인사도 하고 왔는데...헤헤...그래도 보니까 좋다."

 

 

  아이는 이내 미소 지으며 자신의 품에 안긴 여우를 꽉 끌어안고 꼬리에 얼굴을 묻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고개를 든 아이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친 뒤 훌쩍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여기 오고 싶지 않았어. 너무너무 무섭고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먹고 싶은 것도 많은데 벌써 죽는 건 너무 억울하잖아? 그렇지만 어쩌겠어! 누군가는 가야 마을도 마을 사람들도 살 텐데. 다수를 위해 하나가 희생하는 건 어쩔 수 없으니까.

 

 

  "할아버지가 그랬어! 곰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고!"

 

  뭔가 크게 틀린 부분이 있었지만, 여우는 아이의 말을 계속 들어주었다.

 

  "있지. 여우야 진짜 신님이 날 잡아먹을까? 난 작고 말라서 먹을 게 없다고 화내시면 어떡하지? 그래서 마을에 해코지라도 하면 큰일인데……. 신님이 제발 나로 만족하시면 좋겠다."

 

  "..............."

 

  "그리고 난 남잔데 신부라니 좀 웃긴다. 그리고 이 옷 엄청 무겁고 걷기 힘들어. 나름 단장도 했는데 맘에 드시려나."

 

  "억수로 맘에 드니까 걱정하지 마라."

 

  "진짜? 고마워! 다행히……. 뭐?"

 

  "억수 맘에 든다고. 네 진짜 이쁘다."

 

  "여...여우 니가 지금 말한 거야?"

 

  "그럼, 여기 지금 내하고 니말고 또 누가 있노."

 

 

  아이는 믿기지 않은 듯 원래도 커다란 두 눈을 더욱더 크게 뜨며 제품 안에 있는 여우를 바라봤다. 여우는 이내 아이의 품에서 벗어나 몇 발을 내디딘 후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를 피워냈다. 아이는 갑작스러운 소리에 놀라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곧이어 연기 속에서 커다란 인영이 보였고 그것은 점점 아이에게로 다가왔다.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건 사내였으며 은색의 머리카락에 눈동자 또한 은색을 가진 매우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방금 그 여우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사내의 머리 위엔 커다란 여우 귀와 허리 뒤쪽으론 풍성한 여우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여...여우 너 사람이었어?!“

 

  "참말로 그동안 주둥이 다물고 있느라 내 억수로 힘들었다."

 

 

  사내는 바닥에 주저앉은 아이를 너무도 가볍게 들어 올려 저를 마주 보게 고쳐 안았다. 아이는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저를 안고 있는 사내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방금까지 무서워서 엉엉 울어 얼굴은 눈물 자국이 가득한데 본래의 호기심 많은 성격은 어쩔 수 없는 듯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사내를 살펴보기 바빴다. 이미 공포심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이의 그런 모습이 귀여운지 사내는 살풋 미소 지어 보였다.

 

 

  "신부가 울보였구마."

  "아니야! 나 원래 잘 안 울어! 이건 그러니까 그래! 눈에 여우 니 털이 들어간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아이의 행동이 귀여워 사내는 그렇다고 말하며 손가락으로 아직 덜 마른 아이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마! 사무 니 여서 뭐하노! 다들 진작 갔다 아이가!"

  "아 놀란다. 아츠무 조용히 말해라. 오사무 그 아이가?"

 

 

  소리가 들리는 곳을 돌아보자 은발의 사내와 똑같이 생긴 금발의 사내와 그보다 한 뼘 작은 은발에 머리끝이 약간 검게 물든 사내가 서 있었다.

 

 

  "맞심더. 지 생명의 은인입니더."

 

 

  아이를 생명의 은인이라 말하며 오사무라 불린 사내는 아이를 제품으로 더욱 끌어당겨 안았다. 아이는 숨이 막히는지 품에서 바르작거리며 작게 앓는 소리를 내자 사내는 힘을 살짝 풀어 아이가 답답하지 않게 해주었다. 미안타. 오랜만이라 힘 조절이 안 됐다. 괘안나? 으...응 그냥 좀 놀라서. 여우 너 엄청 크구나! 평소엔 나보다 작았으면서. 혹시 나 지금 꿈 꾸는 건가? 진짜 나랑 놀던 그 여우 맞아? 꿈도 아니고 내 그 여우 맞다.

 

 

  "미안타. 느그마을이 그리된거 내 탓이다. 잠시 자리를 비웠더니 이래 될 줄 우에 알았노. 설마 신부까지 바칠 줄 몰랐다."

 

  "무슨 소리야?"

 

  "몇 달 전 세력다툼 때문에 옆 마을 신과 끝 싸움이 있었다. 문디 자식들이 비겁하게 혼자 있던 사무를 습격해서 행방불명이었는데 몇 주 전 겨우 연락이 됐다 안카나."

 

  "그럼, 그때 다친게..."

 

  "맞다, 기습당한 직후였다."

 

  "근데, 니가 다친 거랑 우리 마을이랑 무슨 상관이야?"

 

  "점마 답답하네. 니 바보가?"

 

  "나 바보 아니야!"

 

  "하이고, 목소리 좋네. 여우가 사람으로 변하는 것도 봤으면 눈치를 까야지! 우리가 여기 토지신이다. 즉 니는 우리한테 제물로 바쳐진 거다 이 말이다."

 

  "츠무 니가 아니라 내한테 바쳐진 기라. 니는 귀찮다고 신 때려치웠다 안카나. 그니까 임마는 내 신부다."

 

  "시...신? 여우야 너가 신이야?"

 

  "뭐, 일단은 그렇다. 그래도 이제 걱정 마라. 내 힘도 거의 돌아왔고 한동안 이곳에 있으면 옛날처럼 다시 땅도 기름지고 풍족해 질기라. 그날 니가 피투성이인 채 쓰러진 내를 구해줘서 살았다. 고맙다 유우야."

 

 

  오사무가 한껏 미소 지어 아이에게 고마움을 전하자. 아이는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왜 갑자기 얼굴이 뜨겁지? 감기 기운인가?

 

 

  "그래서 니 금마는 우짤낀데."

 

  "당연한 거 아이가? 내 신부삼을기다."

 

  "시..시시 신부? 키타상 지금 들었슴니꺼? 사무 점마가 미쳤는갔심더! 사무 니 참말이가? 갸는 인간이다!"

 

  "그기 뭐. 유우야 니 내랑 같이가자. 응?"

 

 

  신부라는 말에 아츠무란 금발의 사내가 펄쩍 뛰며 외쳤다. 옆에서 오사무의 모습을 지켜보던 키타라는 사내는 오사무에게 천천히 다가가 안겨있는 아이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기가 억수로 깨끗하고 맑구마. 이래 기가 깨끗한 사람은 내 한 500년만에 보는거 같다. 기만큼 마음씨도 억수로 곱심더. 오사무는 저가 칭찬받은거 마냥 어깨를 으쓱하며 아이의 뺨에 얼굴을 비볐다. 여우야 간지러워. 여우 아니고 오사무다. 내 신부 억수로 귀엽다.

 

 

 

  "근데 오사무 아이도 허락한기가?"

 

  "아직...입니더."

 

 

  그럴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은 키타는 다시 고개를 돌려 아이에게 질문했다.

 

 

  "그래. 이름이 무엇이냐."

 

  "니..니시노야 유우라고 합니다!"

 

  "좋은 이름이구나. 누가 지어준 것이냐?"

 

  "어머니가 지어준 것이라 들었습니다."

 

  "그래, 유우야 너는 어쩌고 싶으냐? 이대로 마을로 가고싶다면 보내주마. 너가 제물로 바쳐진건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지워질 것이며 신관은 내 엄벌에 처할 터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집으로 보내준다는 소리에 아이의 눈에 순간 활기가 돌았다.

 

 

  "정말, 갈 수 있어요?"

 

 

  집에 갈 수 있냐는 아이의 말에 오사무는 행여나 아이가 떠날까봐 아이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유우야.... 오사무의 그런 행동에 아이는 잠시 고민을 한 후 말했다.

 

 

  "만약 제가 남는다면...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도 같이 가도 되나요?"

 

 

  아이의 말에 키타가 싱긋 웃어보이며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참으로 심성이 곱구나. 두분은 걱정하지 말거라. 내 사람을 시켜 정중히 모셔오도록 하마. 그럼, 결정 된거 같구나 오사무. 아츠무 퍼뜩 길 열어라. 아 또 왜 내만 시키는 겁니꺼! 사무만 신부 생기고 내도 신부 가지고 싶슴더! 글게 누가 신 때려치고 놀러다니라 했나. 헛소리 말고 문이나 열어라. 아츠무란 사내는 몇번 궁시렁 거리곤 이내 허공에 손을 띄운 후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 주위에 황금색의 빛들이 모여들어 커다란 원을 만들어 냈다. 유우야 니 진짜 내랑 같이 갈기가? 진짜가?

 

 

  "신님이 모르는 사람이면 거절했을거야. 근데 여우라면 괜찮을거 같아. 내가 죽기전에 언제 여우신부 해보겠어. 안그래? 또 할머니 할아버지도 올거잖아. 그러니까 걱정안할래. 나 여우 신부할게."

 

 

  "여우 아니고 오사무! 아, 진짜 윽수로 좋다. 내 진짜 잘하께. 니는 손에 물 한방울 묻힐 생각하지 말기라."

 

  "뭐야, 나 그정도는 할 수 있거든?"

 

  "그만 꽁냥대고 퍼뜩 온나!!"

 

 

  우리 여기서 사는거 아니야? 하이고 점마 암 것도 모르네. 진짜 신이 사는데가 어떤곳인지 똑똑히 보여줘야 쓰것구마. 니 가서 놀라지마 마래이! 그렇게 말한 아츠무는 이내 당당한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고 키타를 시작으로 아츠무가 뒤를 따랐고 그다음 아이를 안아들 오사무가 뒤따랐다. 이내 3명의 신과 1명의 인간이 황금색 원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작은아이를 마지막으로 더이상 제물로 바쳐지는 사람은 없었다. 땅은 다시 비옥해지고 자연은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제 모든걸 내어주었다.

HAPPY BIRTHDAY TO NISHINOYA 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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