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Goodbye
w. 화예
전생의 기억은 어디까지 이어지는 걸까?
내가 이전에 살았던 기억을 어디까지 찾을 수 있을까?
모든 것은 이어져있다,
사랑 연인 친구 가족 의 관계 그리고
배구.
어쩌면 우리는 아주 먼 우주에서부터 이어진 인연일지도 모른다.
메이지 44년(1911년) 1월 아즈마네 家 에“아즈마네 아사히”가 태어난다.
첫째부터 셋째까지 모두 딸이었다. 늘 딸만 태어나 야스家회장의 딸과 혼인시키지 못해 면목이 없던 그의 아비는 목을 뻣뻣하게 들고 회장을 만나러 갔고, 4살 연상의 회장의 둘째 딸과 태어난 아들과 미래를 약속했다.
같은 해 10월 아즈마네 家 는 두 번째 아이가 태어난다. 그의 이름은 제 어미의 성을 따라 “니시노야 유우” 라 불렀다.
인연의 시작이었다.
니시노야의 5살 생일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난 후부터 아즈마네의 수발은 모두 그의 몫이었다. 기침인사부터 저녁 잠자리까지 유우는 작은 몸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저와 같은 해에 태어났지만 둘은 출신이 달라 자신은 받고 아이는 제게 주어야 하는 것을 어린 아즈마네는 통탄해했다.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며 장갑도 끼지 않은 채 밖에서 땔감을 들고 오는 날이면 아즈마네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목욕탕과 한자를 공부할 때 제 옆에 두고 같이 목욕하고 따뜻함을 나눴다. 웃어른들이 알면 경을 칠 일이었다.
그제는 큰누이의 집에 다녀왔다. 이웃마을의 센베를 만드는 집으로 시집간 누이는 집에서 지낼 때보다 편한 미소를 지었지만 말수가 적어졌다. 집안이 야쿠자라는 이유로 곁눈질로 눈치를 주는 시댁 어른 탓에 오래 있지 못하였지만 니시노야를 누이에게 보여 준 것에 아즈마네는 마음을 놓았다. 집을 나와 마을 시장까지 걸어왔을 무렵 형님의 몸종이 급히 뛰어왔다.
‘이걸 꼭 전달하라는 명이 있으셨어요. 식기 전에 드셔야 하니 부지런히 돌아가세요.’
“유우 오늘은 날이 추운데, 불을 빨리 쓰는게 어떨까?.”
“그럼 들어가서 바로 땔게요.”
“아, 그리고 목욕물도!”
“네! 아사히상 꽤 추우신가 봐요!”
“아니, 춥진 않아. 그치만 오늘은 빨리 준비를 마칠 거야.”
“왜요?”
“준비해서 같이 목욕하고 센베를 먹자.”
“하지만 어른들이 아시면 저번처럼 혼나는걸요?”
“그러니 서둘러 집에 가는게 좋지 않을까?.”
“좋아요!”
쇼와2년(1927년, 1월)
아사히의 18번째 생일이 지나고 닷새 뒤 집안이 다시 분주해졌다. 집안끼리의 약속을 위한 혼인 날짜가 잡혔다. 성인식을 지내자마자 두 집안을 이을 결혼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니시노야 유우는 아즈마네의 전통 결혼식복을 가지러 시장으로 나왔다. 포장을 위해 잠시 기다려 달라는 가게주인의 말에 가게 밖 나무의자에 걸터앉았다. 아사히의 결혼을 모를 리 없었다. 그를 처음 보필하던 다섯 살부터 지금까지 그의 손길이 안 닿는 곳이 없었으니까. 작년부터 같이 외출하는 횟수가 줄어들더니 오지 말았으면 하는 날이 다가왔다. 열흘 뒤 니시노야는 두 명의 아즈마네를 모시게 된다. 새로운 주인이 싫진 않았지만 전처럼 그와 지낼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답답했다.
감나무에 올라가 까치를 내쫓아 떨어지고, 바구니를 엎어 참새를 잡아 같이 모이를 주고 기르는 일 같은 둘만의 비밀은 앞으로 없을 것이다. 같이의 가치를 더 이상 만들 수 없음에 울컥 서운함이 목에 걸렸다. 얼굴 안쪽이 고장 난 것처럼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모시는 분의 결혼이 이렇게 슬픈 일이었던가? 아즈마네와 영원히 헤어짐이 아닌 것을 알지만 함께의 미래에 본인의 존재는 없는 일이기에 니시노야는 옷장사의 부름에 다시 터진 눈물을 애써 닦아냈다,
아즈마네의 성인식 저녁이었다. 가족끼리 모인 자리에서 나온 혼인얘기가 편하진 않았다. 오지 않았으면 하는 순간이 다가오니 불편함이 앞섰다. 표정을 숨기는 법은 어려웠다. 늘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즈마네가 노야에게 느끼는 감정만 겨우 감췄을 뿐이지 그는 유우를 사랑했다. 단순한 연민이 아니었다. 그가 몸종이어서, 불쌍해서, 가여움에 더 이상 그런 일을 시키지 않기 위해서 느끼는 감정이 아니었다. 오롯이 ‘니시노야 유우’ 가 좋았다. 동성애가 금지는 아니지만 이룰 수도 없는 것이었기에, 아즈마네는 천천히 그와 거리를 두었다. 매일 함께 하던 외출과 몰래하던 침소를 줄였다. 목욕과 집안 행사도 다른 몸종을 시켰다. 니시노야도 알았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둘은 그렇게 서로를 사랑했다.
니시노야를 제 품에서 지키려면 약조를 지켜야한다. 10월에 진행하려던 본인의 식의 날을 앞당겨 서둘렀다. 결심을 위해 머리까지 오던 머리도 잘랐다. 태어나 처음으로 아버지께 칭찬을 들은 날이었고 생애 처음으로 그와 떨어져 절에서 밤을 지새웠다. 정리해야하는 날들이 빠르게 다가왔다. 가문의 만남이 이어진 후 4년이 지났다.
아즈마네의 세 번재 누이가 조카를 데리고 왔다. 누이는 얼른 나갈 채비를 하라며 아즈마네의 안안사람도 재촉했다. 오랜만의 외출에 붉어지는 뺨의 설렘은 숨길 수 없었기에 재빨리 방으로 들어갔다. 겉옷을 고르며 준비대의 경대를 쳐다봤다. 우와! 하는 니시노야의 목소리에 심기가 불편했다. 볕이 좋아 열어둔 창문너머로 그의 모습이 보였고, 안주인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급히 외출준비를 해도 표정이 밝았다. 재수 없어.
아사히의 신을 가져다 놓고 조카아이를 너무 높게 안아 들어 넘어질 뻔한 유우를 단단히 받쳐 안고서 서로 바라보고 웃는 모습을 바라본 안사람의 가슴이 저렷다. 기껏해야 종놈 새끼 주제에. 아랫입술을 깨물며 창밖에서 시선을 돌렸다.
시장 구경이 끝나고 인근의 강으로 자리를 옮겼다. 겨울의 따스함을 질투하는 바람은 늘 매섭게 지나쳤다. 1월의 낮은 따뜻하고도 싸늘했다. 뺨을 스쳐 붉게 만드는 겨울바람에도 아이들은 강가에서 나무 팽이를 돌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설이 지나고 추위가 심해지더니 물을 긷고 빨래를 하던 물이 꽁꽁 얼었다. 철없는 아이들은 신이 났다. 강가가 단단히 굳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섯 살 아이와 노는 것은 돌보는 이의 몫이었다. 얼음이 얕은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뛰지 말라는 말에도 아이는 대답만 할 뿐 움직임은 그렇지 못하였다. 어린아이는 바람과 같으니까. 라며 아즈마네가 아이에게 손을 흔들었고 니시노야는 그런 아즈마네를 보고 전과 다르지 않음에 미소를 지었다. 안사람은 이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조카아이가 저의 곁을 쿵쿵 뛰며 나뭇가지로 찌르고 도망가는 장난을 쳤다. 같이 뛰어도 단단하기에 다행이라 생각했다. 괜찮다는 안도감의 오만은 편린조각의 나비효과로 일어났다.
놀이용 팽이의 회전축이 쇠로 이어져 있어 한 곳에서만 놀이를 하면 안 된다. 아주 얇게 얼은 강 한가운데서. 허나 그것을 가르쳐주는 어른은 없었다. 겨울은 삭막했고, 아이들이 나가서 놀고 집에 들어와서 바로 자는 것이 부모를 돕는 일이었다.
평소보다 팽이가 잘 돌아 신난다는 이유로 계속 얼음을 갉던 아이의 팽이가, 깨질 거 같지 않던 견고하던 강의 얼음 견고함을 조각내어 틈을 만들었다.
“위험해!!”
아즈마네와 그의 누이가 동시에 외쳤다. 아즈마네는 노야를 향했고 누이는 한발 늦게 아사히를 쫓아 나가는 안사람을 향해 말했다. 이대로는 남편을 잃는다. 이생각이 가득했다. 아이의 겉옷이 떨어지는 것도 모른 채 강가로 달려갔다. 얕은 선이 길게 이어져 깊은 골짜기를 만들었다. ‘쩍’ 하더니 뒤이어 ‘쿵’ 소리도 이어졌다. 얼음이 조각나고 있었다. 얼음의 강이 갈라졌다.
아이가 우선이었다. 니시노야는 골짜기 속에 떨어지려는 아이의 허리를 잡아 깨지지 않은 얼음 위로 길게 밀었다. 강 웅덩이에 빠지기 전의 일이었다. 첨벙. 뒤이어 큰 소리가 났고 눈앞엔 깨진 물웅덩이와 차가운 눈바람뿐이었다. 뒤늦게 얼음 위에 도착한 아즈마네의 눈앞에 보인 시선이었다.
“사람이 빠졌다! 사람이 빠졌어!”
팽이 놀이를 하던 철없는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우는 아이의 목소리는 중요하지 않았다. 찬 얼음물에 니시노야가 홀로 빠졌다. 일각이 급했다. 얼른 구해야한다. 정신이 혼미했다.
유우!
이름을 부르고 근처에 다가갔다. 조금만 움직여도 금이 가는 곳이기에 자신도 위험했다. 신을 벗고 버선채로 강위를 걷는 아즈마네의 목소리를 들은 노야가 물 위로 손과 얼굴을 번갈아 올렸다. 팔을 뻗어 잡히는 날카로운 얼음의 조각에 감각조차 느낄 수 없는 손은 피가 흘렀다. 얼음조각을 잡으면 잡을수록 웅덩이의 구멍이 넓어졌다. 평소에도 수심이 깊은 곳이기에 노야가 물속에 사라지는 일은 순간이었다. 허우적댈수록 강의 물살에 당겨지는 기분이었다. 아즈마네는 저를 잡아 말리던 안사람을 둔 채 강으로 다가갔다. 한 걸음만 걸으면 물에 들어가서 그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는 아이들을 달래 주변 사람을 불러 오라고 시킨 아즈마네의 누이가 급한 대로 강가 주변의 노부부를 데려왔다. 아즈마네의 살기가 가득한 눈에 당황했다.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우는 아이를 안아 달래며 아사히에게 사람들이 더 온다고 전했다.
주변을 급히 뛰던 아즈마네는 늙은 노부부의 도움으로 강을 건널 때 쓰는 뗏목을 찾았다.
‘유우!’ 이름을 부르며 노야에게 바닥면을 밀었다. 영하 20도의 추위에서 30분도 넘게 물에 빠져있던 그의 몸은 이미 힘이 빠졌다. 남은 힘을 팔에 모아 아즈마네가 건넨 뗏목의 바닥을 잡았다. 겨우 팔을 걸쳐 몸이 반쯤 올라왔을까, 힘에 부친 아즈마네가 제 옆의 안사람에게 같이 잡아 달라 했다. 힘을 보태는 척 아즈마네의 손에 있던 손잡이를 밀어 니시노야를 다시 얼음물로 집어넣은 안사람이 아즈마네를 일으켰다. 다 올라오지도 못한 채 얼음에 머리를 부딪쳐 다시 물에 빠진 노야의 몸은 강 깊숙이 내려갔다.
“그대, 지금, 무얼.. 무슨 짓을 하셨습니까?”
“저자는!!”
“....”
“저자는 단지 몸종입니다.
당신의 몸종이라고요.!!
천한 목숨이지 않습니까?
사람을 부르면 될 것 아닙니까!”
“...천한..... 목숨이요?”
“그럼 천한목숨이지 귀한 목숨입니까? 서방님에 비하면 하찮고 보잘 것 없이 천합니다!”
“ 나의 유우가, 천한 목숨이요?”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고개가 돌아갔고 왼쪽 뺨을 잡은 안사람이 고개도 돌리지 못한 채 그의 말을 들었다. 손위에 다시 손찌검이 이어졌다. 아즈마네는 숨소리마저 조용했다. 세 번째 손을 들었다. 몸을 웅크리는 제 안사람의 모습에 손을 바꿨다, 다시 한 번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천한 목숨? 삶의 전부를 함께하고, 앞으로의 평생을 같이 하고 싶은 저의 노야를 고작 ‘천한 목숨’으로 치부하는 안사람이 싫었다. 눈앞에 치워버리고 싶었다.
니시노야 유우의 시체를 찾은 건 그로부터 두 시간 뒤였다. 물속의 추위를 이기지 못한 노야의 몸이 꽁꽁 얼었고 숨을 쉬지 않았다. 사망 사인은 물속의 동사였다.
노야, 노야.. 유우.. 많이 춥지.? 겉옷을 벗어 시신을 감쌌다. 두르고 있던 목도리도 풀어 목에 둘러줬다. 핏기가 없어 하얀 발에는 제가 신고 있던 버선을 신겼다. 신던 거라서 따뜻할 거야, 그치? 맨 발로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안사람의 여종이 길에 새 신을 가져와 올렸다. 아즈마네는 싸늘히 그 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함께 가서 불공을 드리던 절에 갔다.
아즈마네는 가족들에게 말하고 그의 장례를 치렀다. 새벽마다 기도를 올렸다. 2년 9개월을 꼬박 니시노야의 불공을 드린 아사히는 1000일을 채운 쇼와 8년 10월 15일, 노야의 무덤 앞에서 생을 마감했다.
급소를 찌른 자살이었다.

